‘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조옴 보오소~’
밀양아리랑의 첫 소절이다. 장단 맞춰 걷는다면 100㎞ 걷기가 얼마나 즐겁고 신나랴.
화성걷기연맹 회원들 참가를 독려하러 김명순 회장(존칭어 생략)과 고문이 밀양 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달려왔고 우리 3인은 첫 100㎞ 걷기 도전에 소풍가듯 승용차로 일찍 도착, 영남루에 올랐다. 밀양의 대표 명소 영남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모습으로 영남 제일루라는 이름에 걸맞는 위용으로 우리를 맞았다.
영남루에서 내려다보는 밀양강의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건너편에서는 걷기대회 행사를 준비하는 행사 요원들의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걷기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이기에 다소 생소한 느낌으로 행사장을 바라봤다. 걷기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이것이 대회인 이유를 알게 됐으니, 초짜 신입회원의 무모한 도전임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화성걷기연맹 회장 일행이 밀양역 인근 식당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식사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고 밀양의 대표 먹거리 돼지국밥을 마주했다. 누가 알고 선택했는지 오돈돼지국밥집에서 먹는 국밥은 감칠맛이 제대로였다. 잠시 후 김원기 부회장 내외도 도착해 인사를 나눴고 100㎞ 걷기 오늘 계획에 결의를 다진다.
식사를 마치고 워밍업 기분으로 행사장까지 걸었다. 참가하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며 대회 분위기가 고조됐으나 때마침 빗방울이 떨어지며 출발을 알리듯 쏟아진다. 나는 행사장에서 안철주 박사를 만나 수인사를 하고 우비를 꺼내 입는다.
빗줄기와는 아랑곳없이 대회장인 대한걷기연맹 회장의 인사말이 이어진다. 걷기 참가자 중 몇몇 인사들을 전하며 걷기대회의 중량감과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화성걷기연맹 회장 및 고문을 특별 소개하며 병까지 치유한 걷기의 장점을 재차 강조한다.
이내 출발 전 준비체조를 하고 출발 수신호를 외치는 대회장의 구호에 따라 출발하면서 우리 3인은 아직도 걷기대회 분위기를 익히느라 어설프기만 하다. 다섯, 넷~ 하나 출발! 그렇게 100㎞ 걷기에 동참한다.
우리 화성걷기연맹에선 걷기 도사 두 명이 참가했다는 사실을 대회 이후에야 알게 됐지만, 걷기를 굳이 대회라는 명칭으로 개최한 이유를 두어 시간 지나서야 깨달았다. 모르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줄로 표현하자면-
‘걷기대회는 동네 산책하듯 걷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걸을 수 있는 최대 속도를 100㎞ 내내 유지하며 걷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화성걷기연맹 회원들 각오가 대단했다. 김원기 부회장은 1등을 목표로 도전했고 사무국장 내외는 100㎞ 완보를 목표로 나섰단다. 우리 3인은 100㎞ 걷기를 시작하기 전 당연히 걸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100㎞를 우습게 시작했던 것이다.
▲ 김원기 걷기연맹 부회장 100㎞ 완보증 수여식, 전체 2등 © 동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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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강을 따른 걷기 코스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동행하는 코스라고 표현해야 좋을 것 같은 힐링 코스다. 비록 우비를 입고 걸었지만 내 몸에 떨어졌던 빗방울들이 모여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지금 지나가는 길에 나와 함께 걷는구나 하는 감상에 젖어본다. 그렇게 걸어가는 것이 사치스런 감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10㎞ 지나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기자 출신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실크로드 1만2000㎞를 걷고 쓴 저서 ‘나는 걷는다’에서 ‘이스탄불에서 내가 했던 결심은 터키 수도에서 중국의 옛 수도(시안)까지 단 1㎞도 빼놓지 않고 걷겠다’고 스스로 결정하고 걸었다고 썼으나 나는 1㎞를 수시로 빼놓고 걸으면 좋으련만 하면서 걷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길에는 100㎞ 스프레이 표시와 리본이 이정표 역할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첫 번째 25㎞ Check Point(CP) 삼상교 입구에 도착한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30분쯤인데 석식은 오후 5시 30분부터 제공한다고 했으니 이미 25㎞ 지점까지 선두와는 1시간 넘게 차이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걸어온 길을 복기하며 세부코스를 살펴보고 알게 된 사실을 쓰고 있다. 삼상교에서 석식으로 주는 육개장 국물은 우중 식사로는 안성맞춤이다. 안철주 박사는 내 옆에서 식사하며 “쉬는 시간에는 신발을 벗고 발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해주신다.
아직 발에 무리가 없어 다시 신발을 신고 출발한다. 출발 전까지 정**, 조**이 어디쯤 오고 있을까 걱정 되며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남겨두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출발하고 낙동강과 합류되는 지점에 왔을 때는 이미 날은 어두어졌다. 그저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발걸음 빠른 팀이 앞질러 간다. 아! 저렇게 빨리는 못 가는데 그렇게 보폭을 유지하며 말없이 걷는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 또 한 팀이 지나간다. 아하! 이렇게 뒤처지면 도착할 즈음 맨 꼴찌가 되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이때만 해도 나는 100㎞ 완보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시간은 밤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걱정돼 전화를 했단다. 사실 나는 1주일 전부터 시작된 대상포진으로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딱히, 100㎞ 걷기대회를 예약한 상태였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포기할 수 없어, 아내의 극구 반대에도 참가하게 됐다. 통화하면서는 상태가 괜찮아 무리하지 않겠다며 아내를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고 하염없이 혼자 걷기를 계속했다.
수산교 42㎞ CP에서 체크2 도장을 받는다. 배낭이 부적합한 탓인지 허리가 아프다. 어디 놀러갈 때 메고 가던 배낭을 생각 없이 메고 왔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걸을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며 허리를 자극해 고통을 더해간다. 다리와 발은 아직 무리가 없는데 허리에 통증이 가증되면서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한림배수장을 향해 걸어가는 낙동강 길은 지루했다. 강물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코스에 좌우로 갈대 등이 시야를 가려 지쳐가는 육신에 관심을 끄는 그 무엇도 없다. 단지, 혼자 걷는 내 발자국 소리만이 ‘아무래도 계속 못 갈 것 같은데…’를 속삭이듯 규칙적으로 들린다. 체크3 한림배수장에 가까워지면서 불빛들이 아른거린다. 발걸음이 흔들리며 서너 차례 갈지자 걸음이다. 아무래도 평형감각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언제 왔는지 안철주 박사가 어떠냐고 묻는다. 내 상태를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아까 갈지자 걸음을 걸었노라고 걷기가 무리인 것 같다고 밝혔다.
안 박사는 옛 기억을 말씀하신다. 예전에 100㎞에 함께했던 분이 ‘중도에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라고 했다면서 잘 생각해보라고 하신다. “글쎄요! 일단 한림배수장까지 가서 판단하겠습니다” 그렇게 갈등하며 걸어간다. 지금까지 살면서 걷는 것으로 고민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한림배수장에 도착하기 직전 마음을 정했다. ‘여기서 포기하자. 만에 하나 더 진행하다 쓰러지면 많은 사람에게 민폐가 된다. 아니 대상포진이 악화돼 더 고생할 수도 있지, 그래 포기하자’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편안해진다.
한림배수장 55㎞ CP에는 3인 중 한 명인 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께서 컵라면을 가져다주며 격려해주신다. 고문께서는 커피를 주며 계속 갈 수 있겠냐고 묻는다. “저는 여기에서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말씀드린다. 두 분 모두 아쉬운 듯 위로의 말을 하신다.
▲ 한림배수장 55㎞ CP에서 컵라면 먹고 한 장 © 동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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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걷지 않기로 결정해서 그런지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오한이 온다. 안 박사는 다음 CP를 향해 출발하고 나는 조** 차에 오른다. 차 안에는 사무국장 부인도 쉬고 있다. 출발선에 섰을 때는 ‘우리 부부 100㎞ 완보가 목표입니다’ 다짐하고 출발했는데 우중에 계속 걷는 것은 무리라 판단하고 25㎞에서 중단했단다. 이제 중도포기자가 3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우리는 차에서 지금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사무국장은 도착하고 더 갈 수 있다고 출발하고 정**도 컨디션이 아직은 괜찮다고 이내 다음 CP를 향해 출발했다. 두 사람 모두 100㎞ 완보를 기원하며 우리는 있던 자리를 떠나 행사장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었고 회장과 고문은 행사장에 남겠다고 해서 내려드리고 우리는 인근 숙소를 찾아 들었다.
언뜻 잠이 들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정**이 체크4 가야진사 CP를 찾을 수 없다고 전화한 것이다. 조**은 집행부에 전화해 CP에 진행요원이 있는지 확인하고 잘 찾아보라고 전한다. 잠에 취해서도 걱정스런 마음에 수시로 깨어 잘 걷고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선잠을 잔다. 그 시간에 정**은 두 개의 CP를 한 번에 찾지 못해 되돌아오는 걷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은 가야진사와 삼량진 쉼터 CP를 찾아 확인을 받고 들어오는 집념을 보였다. 사무국장은 75㎞ 지점에서 중단했고 정**은 오전 11시 정도에 완료한다. 30분 전에 완보한 안철주 박사와 모두 결승점에서 환영의 박수를 친다. 정**은 골인 지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도 감격의 흥분을 나눈다.
‘제17회 한국100㎞ 걷기대회’ 우리 화성걷기연맹 회원 3명이 완보했고 그중 김원기 부회장은 2등으로 들어왔다. 염종선 회원도 선두그룹으로 들어왔다니 화성걷기연맹의 걷기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이제 행사를 마치고 상경 길에 오른다. 차창 밖으로 밀양의 봄을 지나친다. 누군가 말했던 ‘잔인한 4월’을 100㎞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이후 나의 걷기에 대한 모든 상식을 바꿔놓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상식은 네거티브가 아니라 포지티브로 작용될 것이다.
밀양을 규정하는 ‘영화 밀양’과 ‘밀양 송전탑’은 어찌 보면 밀양의 역사성을 국민들 의식 속에서 삭제시키는 특별한 이슈에 불과하다. 오히려 밀양아리랑으로 대표되는 지역 정서와 그곳 산천을 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사실에 모두 동감할 것이다. 그곳에서의 100㎞걷기대회는 걷기대회의 역사에도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 글쓴이 목화석풍[木花石風]은 향토시인으로 2020년 늦여름이던가 금주 선언 후 현재를 살고 있으나 한때는 경악(?)할 정도의 말술 애주가였다. 잠시나마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인연으로 당시 반복하던 주사(酒邪)라고 해야 하나? 취기를 빌려 얼큰하게 쏴주던 애송시가 있었으니 김소월의 ‘산유화’였다. 이 섹션은 그런 그가 들려주는 일상의 산유화 버전 ‘자소서’다. 주제/소재 가리지 않고, 장르 구분 없이 장강을 이루는 연작에 쫑긋 눈ㆍ귀를 세운다 ©동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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